그녀가 강화폐교를 지키는 이유는?

- 김미옥 교수의 삶과 예술이 녹아있는 ‘한국강화문화예술원’ -

강화도는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불린다. 이는 강화도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도의 문화 명맥을 잇고자 20년간 강화도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 도예가가 있다. 문 닫은 학교를 지키며 강화도 혼을 담고 있는 예술가 김미옥 씨를 만나보자.

 

 

머리 좋고, 손재주 좋은 소녀, 도예가 되다

 

김미옥 교수는 초등, 중, 고등학교를 인천서 나왔다. 작고 귀여운 소녀는 뭐든 야무지게 잘했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배운 주산 실력으로 ‘듣고 놓고 가감산’ 부분 전국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손재주가 좋아서 가사 실습시간에 인형을 만들면 수예점 샘플보다 더 예쁘게 만들어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동생이 6명 있으니 상고를 졸업해 은행을 가라” 는 부모의 권유로 그녀는 인천 여상을 입학했다. 고교 졸업 후 미대를 간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마침 찾아온 늑막염으로 2년 간 투병생활을 했다. 부모는 김 교수 의지를 꺽진 못했다.

 

 

투병 이후 홍대 공예과에 들어간 김 교수는 3학년 전공 선택 시점에서 물레 차는 선배 모습에 반해 도자기 과를 선택한다. 물레를 찰 때, 그녀가 앓았던 늑막염으로 옆구리가 아프기 일쑤였지만 김 교수는 물레를 차며 도자기 만들 때 제일 행복했단다.

 

그녀는 졸업 후 홍익대, 인천대, 성신여대, 강릉대에서 강의를 했다. 1970년~1980년대에는 여성의 사회생활이 극히 제한된 때였다. 당시 김 교수는 여성 도예가로서 터키, 미국, 우즈베키스탄, 뉴질랜드, 이집트, 독일, 일본, 프랑스 등을 누비며 한국 도예를 알렸다.

 

 

김 교수가 인천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이유는 인천 최초 도자기 전공 교수라서가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그리움’과 ‘기다림’이 개인의 욕망에 대한 추구가 아닌, 과거 도자기 명성을 지녔던 인천에 대한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화도의 딸, 학교를 지키다

 

김미옥 작가는 1946년에 송현동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고향 강화도와의 연은 20여 년 전 강화도의 한 폐 초등학교를 인수하면서부터다. 2000년 강화도 화도면 덕포리에 위치한 ‘마리산 초등학교’에 그녀의 꿈을 심었다.
“어머니는 마니산을 ‘마리산’으로 불렀어요. 마리산에서 뛰놀던 제가 마리산 초등학교를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에 이곳에 둥지를 틀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강화문화예술원’으로 명한 이곳은 원래 초등학교였다. 아이들이 떠난 이곳에 22년간 그녀의 열정과 전 재산을 투자했다.

 

“강화도에 관광 문화명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내 스스로가 관광자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곳에 터를 만들었죠.”
2000년 인수받은 학교에는 뱀과 쥐, 쓰레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쓰레기차로 20차를 버리고, 마루를 손보고, 수도 전기를 새로 끌고 하수와 배수처리 시설을 하는데 큰돈이 들어갔다.

 

3년간 보수 끝에 2003년 ‘한국강화문화예술원’을 개원했다. 도예실 3곳과 연구실, 세미나실, 갤러리로 꾸며진 이곳을 동네 문화공간으로 활용했다.
400여 명이 동시에 도자문화체험을 할 수 있고, 2개의 가마시설에서는 체험에서 끝낸 작품을 구울 차비를 갖추고 있다. 예술원 내에 있는 ‘마리산미술관’에는 김 교수의 작품과 현대도예작가들의 작품을 항시 전시하고 있다.

 

 

세계에 한국문화와 도자기문화를 알리고자 이곳에 청춘을 투자한 김 교수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여지껏 써왔던 이 공간을 비워달라는 ‘강화교육지원청’의 청천벽력 같은 통보 때문이다.
“3000만 원 보증금에 매해 선불로 18% 이자를 내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2년 간 써온 이 공간을 교육청에서 일순간 나가라고 하니 이 많은 작품을 어디로 옮기라는 건지, 그동안 내가 이곳서 해온 문화행보를 끊고 무엇을 하라고 하는 건지 앞이 막막합니다.”

 

500여 점 작품 갈 곳 잃어

 

제자와 함께 만들어 온 500여 점의 작품들이 갈 곳을 잃었다. 여지껏 여성 혼자 몸으로 학교를 지켜오고 관리해 온 공이 물거품 위기에 쳐해 김 교수의 밤은 길기만 하다.

 

 

“요새 잠을 못자고 있습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폐교에 온기를 불어넣고 이만큼 살려놓았는데 캠핑장을 해보겠다, 다른 수익 건물로 운영해 보겠다는 주변 꼬임에 넘어가 한순간에 퇴거를 요구하는 교육청 행동을 이해할 수 없네요.”
그녀의 꿈은 이곳서 이익창출도 아닌, 젊음을 바친 이곳서 강화의 문화 명맥을 잇는 것이다.

 

2026년 인천공항에 세계최대 규모의 미술품 수장고가 생긴단다. 항온, 항습 등 미술품 보호를 위한 최상의 환경을 갖춘 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니 참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20년 묵묵히 예술 활동을 하면서 강화도 문화공헌 사업을 하는 노교수가 아무 근심 없이 이웃과 함께 작품 활동을 펼치고 도예를 알릴 수 있게 돕는 것, 그것이 아마도 세계최대 무언가를 세우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일지도 모른다.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린다. 가녀린 코스모스는 흔들릴망정 뽑히진 않는다. 말라서 약해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코스모스 같다. 꺾이거나 뽑히지 말고 굳건히 버텨 강화도의 문화를 알리는 교두보로 영원히 남길 바랄 뿐이다.

 

■ 강화도 한국강화문화예술원
○ 주 소 :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 1210
○ 시 설 : 도예실 3개, 연구실, 세미나실, 갤러리, 7개 교실 동시 240명 수용가능
○ 체험교실 : 도자기 만들기, 물레 체험, 숲체험, 운동장 체육, 운동장 캠핑, 갯벌체험
○ 문 의 : 02-2643-1117, 010-5332-1117

 

출처 : 글· 사진 이현주 i-View 객원기자 o70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