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신문] 박 진 기자 |
국가유산청-서울시 타협점 못 찾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 맞은편에 높이 142m의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계획이 세워지면서 ‘제2의 왕릉뷰 아파트’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와 20년 넘게 표류하던 세운상가 재개발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의 견해차가 커 합의점 도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3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10월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을 시보에 고시했다. 이번 고시는 세운4구역의 높이 계획을 변경하는 게 주요 골자다. 이에 따르면 세운4구역의 건물 최고 높이는 당초 종로변 55m, 청계천변 71.9m에서 종로변 98.7m, 청계천변 141.9m로 변경됐다. 세운4구역은 북쪽으로 종묘, 남쪽으로는 청계천과 접해있다.
시 관계자는 “세운4구역은 200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으나, 9년간 총 13회에 걸쳐 문화유산 심의를 받으며 높이가 50m 축소되면서 사업 동력을 잃고 장기 지연됐다”면서 “종묘 경관을 훼손하지 않도록 앙각 기준을 확대 적용해 도심 기능과 환경이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세운4구역의 높이 기준이 변경되는 건 2018년 이후 7년 만이다. 세운4구역은 2004년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꾸준히 재개발을 추진했으나 역사 경관 보존과 수익성 확보, 잦은 사업 계획 변경 등으로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특히 사업시행인가를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의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2018년에야 55∼71.9m 기준이 정해졌다.

그러나 높이 계획이 달라지면서 국가유산청과 서울시간 다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인 종묘의 가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으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더불어 한국의 첫 세계유산이다.
국가유산청은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은 핵심 요소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규모 사업이기에 ‘세계유산영향평가’가 필수라는 입장이다. 세계유산 관련 활동을 총괄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WHC)는 여러 잠재적 개발로부터 세계유산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유산영향평가(HIA)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11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하도록 명문화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약칭 ‘세계유산법’)이 시행된 만큼, 서울시 측이 영향평가를 이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세운4구역의 높이 제한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유산청과 여러 차례 협의하고, 타협점을 찾으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서울시 측은 세운4구역이 높이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다. 세운4구역은 종묘로부터 약 180m 떨어져 있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서울 기준 100m) 밖에 있으므로 ‘세계유산법’ 등에 따라 규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은 지정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정하는 구역으로, 유산의 외곽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서 시·도지사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조례로 정하도록 한다.
서울시 측은 “종묘의 국제적 위상 강화,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남북 녹지 축 및 녹지생태 도심 실현을 위해 높이 계획은 조정하는 것이 적정하다”고 밝혔다.
학계 안팎에서는 이른바 ‘제2의 왕릉뷰’ 사태로 번지는 게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의 견해차가 큰 만큼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인 김포 장릉(章陵)은 풍수지리상 중요한 계양산을 가리는 대규모 고층 아파트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른바 ‘왕릉 뷰 아파트’가 세계유산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식 문서로 우려를 표명했고, 올해 3월 전문가 공동 실사에 나서기도 했다.
<뉴스출처> 문화일보











